어떤 시대건 정보의 유통권을 쥔 자가 세상을 지배해 왔다. 미디어가 거대 자본과 권력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 성벽 안에서 생산된 정보는 반증 불가능한 ‘정답’으로 군림했다. 21세기 디지털 혁명이 그 요새의 문을 열어젖혔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여전히 플라톤이 경고했던 ‘동굴’ 안에 머물러 있다. 거대 미디어와 포털이 투사하는 왜곡된 그림자를 진실이라 믿으며, 그 너머에 존재하는 ‘태양’의 빛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2024년 12월 3일, 그 동굴의 벽면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윤석열의 내란 선포와 긴박했던 진압의 과정 속에서 전통적인 재래식 언론의 속보의 속도와 현장의 진실을 담아내는 데 있어 처절할 정도로 무력했다. 오히려 동굴 밖의 빛을 먼저 비춘 것은 실시간으로 현장을 중계하던 유튜브 방송과 뉴미디어의 기동성이었다. 서부지방법원을 둘러싼 폭동과 그 비극적인 진압의 현장에서도 기성 언론은 시스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으나, 대중의 눈은 이미 그들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가공되지 않은 진실을 갈구하고 있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준엄한 경고는 오늘날의 언론 지형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진실에 대한 추구를 외면하고 기성 시스템의 안락함에 안주한 대가는 결국 자극적인 수익 구조에 매몰된 혐오 비즈니스와 낡은 이념 논쟁에 사로잡힌 저질스러운 정보들에 경도되는 현실로 돌아왔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미디어 생태계는 구체제의 모순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12.3 내란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 기성 매체의 한계는, 그들이 신봉해온 ‘기계적 중립’이라는 패러다임이 더 이상 진실을 담아낼 수 없음을 알리는 명백한 전조였다.
내란이라는 국가적 비상사태 앞에서도 기성 언론은 누가 선(善)이고 무엇이 정의(正義)인지 가려내기보다, 양측의 주장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며 ‘객관성’이라는 방패 뒤로 숨어버렸다. 이러한 기게적 중립은 진실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사실상 불의에 눈감는 비겁한 면죄부로 전락했다. 쿤의 이론에 따르면, 기존 패러다임이 해결하지 못하는 ‘변칙 사례(Anomaly)’들이 누적될 때 혁명은 시작된다. 내란의 현장에서 선동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양비론에 매몰된 기성 매체의 무력함이야말로, 그들이 수호해온 저널리즘의 패러다임이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동굴 안의 그림자 놀이와 같은 기계적 중립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독립 언론의 실존 자체가, 이 낡은 패러다임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언론 지평을 여는 혁명의 시작이다.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자가 아니라, 붕괴한 구체제의 파편 위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명확히 규정하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언론이 만들어 낸 그 거대한 오만 앞에서 단순한 저항을 넘어선 대안을 결심했다. 나를 배제했던 그들의 낡은 문법에 매달리는 대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우리’의 시스템을 직접 설계하기로 한 것이다. 플라톤이 말한 ‘태양’은 선(善)의 이데아이자 만물의 근원이다 나는 그 빛을 가로막는 동굴의 벽을 허물고, 누구나 직접 태양을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 전달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 이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부조리한 패러다임이 해결하지 못하는 진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구조적 접근이다.
이제 나는 시스템으로 증명한다. 동굴 안에서 그림자의 길이를 재는 행위가 언론인가, 아니면 동굴 밖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진실을 직조해 내는 설계가 언론인가. 기성 세력이 저질스러운 정쟁에 함몰되어 있을 때, 나는 우리가 설계한 독립적 시스템 위에서 시대의 통증을 가장 정교하게 기록할 것이다.
편견은 설계도가 되었고, 배제는 시스템의 동력이 되었다. 오만에는 더 큰 오만으로 맞서겠다. 다만 그 오만이 한낱 객기가 아닌 합당한 도전이라는 점을, 오직 실력과 전문성으로 끊임없이 입증해 내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