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남에게 투영해 보는 순간,

‘나’를 ‘남’에게 투영해 비교하는 순간, 내 인생은 고달파지는 것 같다. 필자의 경우 남과 비교되는 경우 원래부터 잘난 사람이였거나, 현재 잘 나가고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전자의 경우는 없었고 후자가 많았다.) 근데 사실 여기에 모순이 있는 것이 저들의 위치와 내 위치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다름에도, 저들과 내가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이유 하나로, 저들의 존재 때문에 스스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전제를 제대로 설정하였나?

예컨대, 100미터 9초 대로 뛰는 A 마라토너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A마라토너가 100미터 9초 대로 뛰는 것을 놓고, ‘나는 왜 A마라토너처럼 달리지 못할까?’라고 스스로 비관하는가?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비교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지만, 사실 A마라토너와 ‘나’라는 것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A마라토너는, 자신이 100미터 9초 대로 뛰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그가 이렇게 달리기 위해서 엄격한 식단관리와 체력 관리 무엇보다 100미터 9초라는 확연한 목표를 가지고 그만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지만, 반면, 필자는 A마라토너와의 조건으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떄문에, 애초에 비교 자체가 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각자 사람이 태어나 살아온 환경이 다르며, 개인의 특성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데, 어찌 그들이 살아가는 것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고, 박탈감을 느껴야 한다니.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보면, 너무 인생이 비굴하고 초라해지지 않는가?

잠시 식물이 자라는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본다면, A식물과 B식물, C식물이 세가지 식물 모두 같은 품종이라는 전제를 놓고 생각해 보자. 세가지 식물 모두 같은 하우스 안에서 일정한 온도와 비료, 물을 각각 똑같이 매일 주고, 자라는 속도를 지켜 본다고 하자. 그리고 약 100일이 지났다. 식물 A와 B,C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답은 ‘다르다’

왜냐하면, 품종이 모두 동일한 식물 A와 B, C에게 모두 같은 하우스라는 환경에서 동일한 온도와 비료, 물을 주며 키워도, 자라는 속도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각 식물들이 처음부터 가진 고유의 특성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식물은 위의 사례처럼 동일한 조건으로 키워 새끼를 치고 정원을 이룰 수 있는 반면, 어떤 식물은 잘 키운다고 하더라도 금방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도 식물과 마찬가지다. 각자가 가진 특성이나 성장하는 속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또, 마라톤처럼 ‘격차’가 벌어짐을 찾을 수 없다. 설령 개개인의 격차를 발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과 사람간의 진정한 격차인가는 두고 보아야 할 문제이다.

물론 조바심에 비교가 될 수 있다. 또한 주변의 영향(부모, 친인척)도 클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가지, 그러한 급류에 너무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상류에서는 모든 물이 눈 깜짝할 사이 중류로 내려간다. 이 과정은 모두가 힘들지만, 잘 버텨 내야만 한다. 상류와 중류를 버텨낸다면 하류는 전 과정에 비하면 비교적 순탄하다. 여기서는 나의 속도 만큼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있을 것이다. [참고글: 각자의 정원의 속도]

끊임 없이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이에게 기회가 있다.

잠시 현실로 돌아와서, 미국 실리콘밸리가 대단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흔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연속 창업가’가 많다는 점이다. 여기서 ‘연속 창업가’란, 성공한 CEO가 아니다. 무수히 실패를 겪은 창업가도 연속 창업가이다.

그들에게 ‘실패’는 ‘언제 갚아나가야 할 빚’이거나 ‘악재 Risk’가 아니다. ‘실패’는 ‘삶의 자산’이다. 좋은 시제품, 아이디어 그리고 ‘스토리’가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해도 오뚜기 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실리콘밸리 힘은 연속 창업자 –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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