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미디어는 거대 자본과 권력을 가진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었다. 종이 신문 한 부가 독자의 손에 쥐어지기까지는 수억 원의 자본과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정보는 높은 성벽 안에서만 생산되었고, 대중은 그저 성 밖에서 주는 정보를 받아먹을 뿐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인터넷의 발명은 이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렸다. 초창기에는 모니터로 기사를 읽는다는 것이 생소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손안의 기기로 세상을 읽고 스스로 기사를 발행한다. 발행 비용은 현저히 낮아졌고, 언론의 문턱은 마침내 평등해진 듯 보였다.

문턱은 낮아졌으나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거대한 산맥을 향한다. 영국의 BBC처럼 한국의 KBS, 그리고 MBC와 SBS로 대표되는 지상파 방송사는 여전히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유선 방송의 메인 채널을 점령한 이들의 목소리는 곧 여론이 되고 상식이 된다. 하지만 그 영향력의 크기만큼이나 공영 방송이 짊어진 그림자도 짙다. 거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의 논리,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간섭은 그들의 펜 끝은 무디게 만든다. 거대 언론이 시스템의 눈치를 보느라 침묵할 때, 소외된 진실은 그 거대함 속에 매몰되곤 한다.

내가 직접 독립 언론의 기치를 들고 현장에 나섰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환대가 아닌 차가운 냉소였다. 세상은 낮은 문턱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목소리를 각자의 선입견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며 날 선 질문들을 던졌다.

“수완뉴스, 거기 광주광역시 신문이야? 왜 수완이야?

이름이 주는 낯섦을 지역적 한계로 가두려는 시선. ‘수완(水完)’이 지향하는 가치보다 행정 구역의 명칭으로 먼저 치부해버리는 단편한 사고 방식.

“청소년 언론? 애들 소꿉장난 아니야?”

나이가 전문성을 결정한다는 고루한 편견. 기사의 질보다 기자의 생물학적 나이를 먼저 묻고, “학생이 공부나 하지 무슨 기사를 쓰느냐”며 가르치려 드는 권위주의적 냉소.

“포털과 제휴 안되어 있으면 취재를 허가할 수 없습니다.”

거대 IT 플랫폼의 승인이 언론의 면허증이 되어버린 기형적 구조. 포털이라는 성벽 안에 들어가지 못한 언론은 진실을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제도적 장벽.

이 알 수 없는 야유와 보이지 않는 벽들 앞에서 나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비난들이 나를 깨웠다. 칼 포퍼(Karl Popper)의 반증주의에 따르면, 어떤 이론이 과학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증의 시도를 견뎌내야 한다. 기성 언론이 구축한 ‘포털 제휴가 곧 언론의 자격’이라거나 ‘나이가 전문성을 결정한다’는 명제들은, 사실 진리가 아니라 단지 반증되지 않았기에 유지되어 온 견고한 독단일 뿐이었다. 나의 취재 현장은 그 거대한 오만에 던지는 하나의 ‘반증 사례’였다.

또한, 토마스 쿤(Thomas Kuhn)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미디어 생태계는 구체제의 모순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거대 공영 방송과 포털 중심의 주류 패러다임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각지대, 즉 ‘변칙 사례(Anomaly)’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람들의 냉소와 비난은 오히려 기존 패러다임이 수명을 다했음을 알리는 전조이자, 새로운 언론의 시대가 도래해야 함을 증명하는 강력한 근거였다. 기성 매체의 문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수완뉴스’의 존재 자체가, 곧 낡은 패러다임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언론 지평을 여는 과학적 혁명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를 무시했던 그 모든 차가운 시선 앞에 당당히 묻는다. 포털의 성벽 안에서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것이 언론인가, 아니면 거부당한 현장에서 끝내 진실을 건져 올리는 것이 언론인가. ‘애들 장난’이라며 나의 펜을 비웃던 이들이 낡은 이념 논쟁에 매몰되어 있을 때, 나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대의 통증을 기록해 왔다.

나의 독립 언론은 단순히 하나의 채널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 미디어가 안주해온 썩은 토대를 뒤흔드는 경종이다. 제도권의 허락 따위는 피료 없다. 취재 허가권이라는 완장을 차고 진실을 검열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무리로 있지 않으면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비겁한 권위주의자들에게 나는 나의 ‘전문성’으로 응답할 것이다.

야유는 확신이 되었고, 비난은 동력이 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기성 언론이 닿지 못하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날카로운 문장으로 세상을 깨울 것이다.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멈추지 않고 타종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이며, 수완뉴스가 증명해낼 유일한 실존의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