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스타 작가이다. 누구나 김은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스타 작가 김은숙’이라 부를 만큼 그녀의 평판은 대단하다. <상속자들>, <도깨비>, <더 킹: 영원의 군주> 셀 수가 없는 흥행작을 써낸 그녀는 대중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대사와 세련된 미장센, 그리고 회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몸값은 그녀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완벽한 ‘정답’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녀의 세계에서 사랑은 언제나 찬란하고, 시청자들은 그 신기루 같은 환상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 화려한 껍데기를 한 꺼풀 벗겨내면, 지독하리만큼 견고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원형이 드러난다. 그녀의 서사에서 여성 주인공의 고난을 해결하는 열쇠는 언제나 남성 주인공의 ‘압도적 자원’이다.
과거의 재벌 2세(상속자들)는 불멸의 신(도깨비)으로, 혹은 평행세계의 황제(더 킹)로 진화하며 외피를 갈아입었으나, 본질은 본하지 않았다. 여성은 여전히 절대 권력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비로소 구원받는 수동적 존재로 머문다. 이러한 구조의 반복은 사랑이라는 인간의 숭고한 감정조차 ‘계급적 우위’와 ‘자본의 힘’ 아래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편협함이 드러난다. 이는 시대가 요구하는 주체적 여성상과는 거리가 먼, 낡은 가치관의 복제일 뿐이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가장 주체적인 복수극이라 평가받는 <더 글로리>에서 절정에 달한다. 학교 폭력 피해자 문동은이 가해자를 파멸시키는 과정은 분명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 복수의 완성 역시 ‘병원장 아들’이라는 완벽한 조력자(왕자)의 물적·인적 자산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지점에서 결국 김은숙표 신데렐라 서사의 변주임을 고백하고 만다.
더욱이 폭력을 폭력으로, 악을 더 큰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해결하려는 방식은 매우 단편적인 접근이다. 이는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과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고찰보다는, 가해자이 파멸이라는 자극적 결과물에 대한 집착한 결과이다. 결국 김은숙의 서사는 ‘성찰’이 아닌 ‘전시’에 머물러 있다.
변증법적 관점에서 볼 때, 김은숙의 작품 세계는 대중성이라는 ‘정(正)’과 낡은 가치관이라는 ‘반(反)’,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合)을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펜 끝이 칼끝보다 날카로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자극적인 복수와 절대적 권력에 기댄 구원만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 매체라는 틀 안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에게 시청률과 상업적 성과는 외면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수백억 원의 자본이 투입되는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원초적인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은 어쩌면 작가로서의 안주가 아닌, 매체의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김은숙 작가 역시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변주를 시도해 왔다. 단순히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서사에서 벗어나, 시대적 화두를 던지거나 장르적 변용을 꾀하며 대중 매체가 가진 상업적 공식 안에서 작가적 영토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떄문이다.
그래서 대중의 기호를 정확히 읽어내고 화려한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그녀의 능력은 가히 신묘하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삶에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보고 싶다. 진정한 거장이라면 이제 반짝이는 대사 뒤에 숨은 평면적인 인간 군상을 버리고 뒤틀린 구조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찾는 진짜 이야기를 고민해야 할 때다.